영화 성난황소(Raging Bull, 1980) 인트로 영상

 

명성에 비해 상복이 없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황소(Raging Bull, 1980) 인트로 영상.

 

 

천재적인 권투 실력을 가졌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고삐 풀린 성난황소 마냥 행동하는 제이크 라모타(로버트 드니로)의 어두운 삶을 보여 주려는 의도에서 흑백영상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아무튼 이 영화는 인트로 화면부터 우리를 압도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배경음악 The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이탈리아 작곡가 Pietro Mascagni)의 나긋한 리듬에 맞추어 링위의 복서가 춤추듯이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거기다 뿌연 배경과 흑백 영상.
모든 것이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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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For Vendetta – 우리에게 혁명의 힘은?

http://wwws.warnerbros.co.uk/vforvendetta/photos.html

문화 생활을 즐길 여유가 별로 없는 터라 오늘도 집에서 케이블 채널을 이리 저리 뒤지다가 괜찮은 영화를 발견했다.  브이 포 벤데타

물론 출시된지 벌서 5년이 넘은 영화이다. 그 당시 영화 포스터를 보았을 때 가면을 쓴 남자 한 명이 있길래  시시콜콜한 원맨 히어로 영화로 단정 지었다. 다소 유치한 제목도 맘에 별로 들지 않아서…  그러나 오늘 감상하고 나니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영화임을 알게되었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세계 3차 대전 후 영국에 셔틀러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나라를 지배한다. 이에 불복종하는 자들은 캠프로 끌려가서 고문 당하고 죽음을 당한다. 거기다 바이러스까지 유포시켜 국민들을 희생시키고 공포를 조성해서 자신만이 구원해 줄 수 있다는 안심을 심어준다. 캠프에서 생존한 ‘브이’라는 영웅이 나타나서 악을 응징하고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이다. 문학 작품에서 인용한 듯한 진지한 대사와 시종일관 어두컴컴한 분위기라 오락적인 요소는 다소 떨어진다. 뭐 주인공이 거의 불사조 수준이라 악당들을 해치울 때 여기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권선징악의 매너리즘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왜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걸까?

위의 사진은 영화 거의 끝자락에 나오는데 엄청난 수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장면이다.
도미노의 시작은 하나의 조각으로부터 시작된다. 브이 자신이 희생하여 혁명의 도미노를 일으키겠다는 의미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모두가 약속했다는 듯이 브이의 가면과 복장을 하고 시민들 모두 트라팔가 광장에 모여든다. 속에서 꿈틀거리던 저항의 힘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브이 자신도 감옥에 있을 때 옆방의 발레리라는 여인의 편지를 받고나서 역경을 이기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녀의 편지를 읽은 사람만이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편지를 읽어주는 사람에 의해서 그녀는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고, 당신이 없다면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 편지 내용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네가 있기에 비로소 내가 있다는 것. 이런 연대의식이 혁명의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런 연대의식이다.
개인적인 이기주의는 물론이고 지역간 불신도 여전히 팽배해 있다. 분단된 상황에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피할 수 없는 불리한 조건이기에 다같이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우리나라는 프랑스같이 역사적으로 아래로부터 혁명을 일으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적이 없다. 을미, 갑오개혁은 명복상 법률적인 평등을 이뤄냈을 뿐이고 동학 농민운동과 광주 민주화운동은 엄청난 희생자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평등과 자유를 스스로 얻어낸 적이 있는 국민들은 역사적 사명이 피에 흐르는지 억압당하고 자유를 침해당하면 곧바로 반작용이 일어나서 자신들의 힘을 보여준다.
여느 국민들 못지 않게 우리도 진취적이었지만 요즘 들어서 국민들은 힘을 잃어 버린듯 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비상식적이고 부조리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저 지켜보기만한다. 이제 너무나 치쳐서 될 대로 되라는 식인지도 모른다.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에 인생을 다 걸어야 할 판이므로 예전같이 세상을 바꿔보자고 집회나 시위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정자들은 왜 이것을 모르겠나. 언론 매체를 이용해서 국민들을 더 우둔하고 소극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신기하게도 이 나라는 망할듯 하면서도 삐걱거리면서 잘도 굴러간다.

우리에게는 브이나 홍길동과 같은 혁명의 불씨를 불러일으키는 도미노가 없는 것일까?